-보르헤스와 노벨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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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제가 꼭 한 번 포스팅하고 싶은 작가. . 보르헤스
그분의 독자 중 한 사람으로서 오늘은
「보르헤스와 노벨문학상」이라는 이름으로 찾아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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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이라 해서 그들만이 최고의 작가라는
관점은 피해야 한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최고의 작가들로 평가하는 제임스 조이스,
프란츠 카프카, 호르헤 보르헤스 등은 많은 걸작들을 남겼지만
그들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노벨문학상을 거부한 바 있는 장 폴 사르트르처럼
문학과 문학인에 대한 엄정한 성찰이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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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이자 시인, 평론가로서
환상적 사실주의에 기반한 단편들로 현대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특히 20세기 세계문학의 지배자 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창시자격인 인물 등
온갖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인물로 라틴아메리카 문학은
보르헤스 前과 後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평판이 자자한
20세기 석학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모국어인 스페인어 外에
영어,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고 하며
움베르토 에코, 에코 말고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대문호 파울로 네루다와
롤리타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연금술사의 파울로 코엘료 등
온갖 쟁쟁한 작가들이 고개 숙이고 찬양했던 소위 本座(?) 입니다.
1944년 <픽션들>, 1949년 <알레프>의 발매로 명성이 극에 달하고
여러 나라에서 훈장과 문학상을 수도 없이 받았으며
많은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보르헤스였지만
노벨문학상만큼은 끝내 그를 외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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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가들은 보르헤스가 단 한 편의 장편소설도 쓰지 않았던
단편 위주(보르헤스 전집 5권* 外 다수)의 창작 형태가
결격 사유가 됐다고 말하기도 하고, 보르헤스의 보수적 성향이
좌파적 작품을 선호하는 노벨위원회와 맞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나에게 노벨상을 주지 않는 것이 스칸디나비아의 전통이 되어 버렸다"고
서슴지 않게 말하고 다녀 보르헤스가 노벨위원회에 심한 반감을 내보여
괘씸죄에 걸렸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또한 1976년 칠레정부가 수여하는 훈장을 받기 위하여
산티아고를 방문하였을 때 독재자 피노체트와 포옹한 것으로
노벨상 수상이 물 건너갔다는 說도 .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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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노벨상과는 별도로 그의 작품들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사조의 상징물이 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끈 푸코와 데리다를 비롯한 스타 철학자들은
앞다퉈 보르헤스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시인했으며
움베르토 에코는 "보르헤스가 없었다면
「장미의 이름」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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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6월 14일, 보르헤스는 87세를 일기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영면에 들어
그곳의 한 묘지에 묻혔습니다.
그의 사후. .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한 보르헤스를 두고
「그것은 보르헤스의 수치가 아니라 노벨의 수치다.」
라고 評하는 자들이 지금까지도 끊이질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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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전집 5권(1996 민음사 刊)
1. 불한당들의 세게사
2. 픽션들
3. 알레프
4. 칼잡이들의 이야기
5. 셰익스피어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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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http://cafe.daum.net/peomsky/CcsR/4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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