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소묘(素描)
늘 다니는 길, 옆 외딴집은
개발바람에 올라선 8차선 신작로 때문에
분화구처럼 움푹 패어버려 논마지기와 대밭 사이에
지금은 여남 통의 허름한 벌집 거느리는
사립도 없는 폐가입니다.
죽었는지 떠났는지
몇 년째 벌 한 마리 보이지 않는, 빈 마구간 옆으로
산에 길을 내어 다니는 사람들이
가끔, 밭일하는 주인처럼 측간을 드나들어
언뜻 보기엔 사람 사는 집
웃으면 따라 웃고, 눈물은 닦아주고, 외로우면 감싸 안았을
쭈그린 채 공허한 이 집, 내일 헐린답니다.
부득불, 한 영혼이 소천(召天)한다기에 인적 드문 저녁
조심스레 촛불 하나 들고 마지막 조문객으로 들었습니다.
오래 격리되어 곰삭은 고독이 낯선 침입자의 숨통을 잡았고
널브러진 공간을 검색하는 촛불도 이내 소름 돋습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물레처럼 도는 객(客)이
주인이 떠난 물증인 듯한 2007년 4월, 농사달력 앞에 서니
한창 일철을 앞두고 집을 비운 것 같습니다.
달력 위로 눈을 드니 둥근 침(針)통처럼 붙어 있다가
덕지덕지 거미줄에 포획된 벽시계, 의 시간은 11시 43분
정오인지 자정인지에 올라서지 못해 끙끙거린 시간의 미라가
유리관 속에서 자못 처량해 보입니다.
숱한 사연들 두고 떠나는 모습치고는
그래도 의연하다 할까요.
2010/11
Note:
아이러니하게도 예전에는 집이라면
우리는 보통 주택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그것도 70년대의 목조단층집이나
초가집 또는 슬레이트집이 더 익숙합니다.
그 시절엔 마을에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기울음 소리는 이웃담장을 넘었고
행여 누군가 마을에서 세상을 버리는 일이 있어도
그 곡소리는 이웃 동네에서도 들어서 다 아는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오며가며 아파트 현관 앞에 설 때마다
굳게 닫힌 두 문을 보면서 마음이 전해지지 않고
마음이 흐르지 않고
저수지의 둑처럼 꽉 막혀있음을 늘 느끼는 바
이즈음의 이웃 간 무정함이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환경으로 돌리자니
적잖이 씁쓸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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